[여성향 게임] Office Lover 공략 chapter.10 - 뒤바뀐 디자인 <下>

 

chapter.8 - 뒤바뀐 디자인 <下>

 

 

 

'휴…. 오늘도 어떻게든 무사히 끝나는구나.'

 

하지만 아직 퇴근 시간까지 시간이 남았다. 집에 가기 전에 정리를 좀 해 둬야지.

회사에서의 정리라는 것은 단순히 책상을 닦거나 바닥을 진공 청소기로 쓸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직원들도 그 동안 쌓인 휴지통을 비웠고, 나 또한 더 이상 쓰지 않는 서류들을 파기하며 대청소를 했다.

 

"죄송합니다, 휴지통을 비우러 왔어요."

 

나는 서류 박스 가까이에 있는 직원의 자리로 다가갔다.

 

"음? 아-아니!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직원이 당황한 듯 내가 집으려는 서류를 빼앗아 들었다.

 

'어…?'

 

모든 서류를 파기하는 것은 회사의 정책이었다. 특히 디자인 아이디어와도 같은 보안 문서는 더더욱.

 

'내가 좀 지나쳤나? 다른 일을 하러 가야겠다.'

 

"그럼 저 찻잔이라도 좀 씻어 드릴까요?"

"아… 응, 고마워. 그래 주면 고맙겠어."

 

나는 사원들의 머그잔을 쟁반에 모아 사무실 부엌으로 향했다.

 

 

 

탕비실로 가까이 다가가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미 그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엿들을 생각은 없지만, 나도 찻잔을 씻을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밖에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까 그 일은 다 뭐였던 거예요?"

"그 일이라니?"

"린과 관련된 그 모든 난리들 말예요."

 

'또 나…?'

 

듣기 싫은 이야기였지만 차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아와무라 씨, 그녀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말을 정말 믿어요?"

"솔직히? …아니 전혀."

 

아와무라 씨의 말을 듣고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내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회의실에서는 잡지가 다 거짓말이라고 말씀하셨었잖아요?"

"확실히 그랬지. 하지만 부장님이 계신 앞에서 딴 소리를 할 순 없잖아? 누가 봐도 의도가 보이는 자리였는데."

"다들, 나랑 같은 입장 아냐?"

 

그랬던 거였어…?

그런 이유 때문에 회의실에서는 모두가 날 옹호하는 것처럼 꾸몄던 거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고. 그 잡지에 실린 글들을 봐. 그걸 어떻게 믿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건 그래요…."

"시라이시 씨도 회사 임원으로서, 디자인 부장이 아마네에게 완전히 빠져버렸으니 편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던 거겠죠."

"어이 없지 않니? 지금이 무슨 중세 시대도 아니고 말야."

 

두 여직원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어쨌든, 뭐, 그래. 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놀라지 않기로 했어."

"키타자와 씨에 시라이시 씨까지…. 걔는 정말 모든 걸 다 가졌어. 안 그래?"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솔직히 부럽기까지 해요. 저도 키타자와 부장님은 굉장히 동경하고 있었는데…."

"같은 여자가 봐도 아마네는 참 대단한 것 같지 않아요?"

"그래, 동감이야. 아무튼, 키타자와 씨가 그렇게까지 눈이 어두운 줄은 몰랐어. 그게 더 놀라워."

 

그 말들은 잡지에 적힌 그 어떤 루머들보다도 더 나에게 상처로 다가왔다.

나는 현기증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손에서 힘이 풀리면서 잔들을 떨어뜨릴 것 같았지만, 간신히 힘을 주어 쟁반을 잡았다.

내 손은 어느 새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사랑에 눈이 멀면 누구나 어리석어지는 법이죠. 그들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그렇지. 그렇게까지 사람이 변하다니, 여자 한 명을 위해서 자신의 이름과 커리어에 먹칠을 할 줄은…."

"그렇게 이상적인 리더였는데…. 저도 한때는 부장님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따라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구요."

 

나는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막 등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고 할 때, 키타자와가 내 눈 앞에 있었다. 그는 이미 부엌 쪽을 보고 있었다.

 

'아, 안 돼…. 얼마나 들은 거지?'

 

귀가 빨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는 말없이 내 팔을 잡고 그 자리를 나와 부장실로 데려왔다.

 

"……."

"저, 아까 그 이야기들은…."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나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됐어, 그냥 잊어버려. 아무 것도 아니야…."

 

그는 내 귀에 대고 그렇게 속삭이면서 내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듣지 마. 무시해 버려."

"그리고 어떤 일에도 자신을 책망하지 마. 그들은 그럴 자격이 없어."

 

그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목소리는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며 아이를 안심시키는 부모와도 같이, 친절하고 따뜻했다.

 

"네가 한 짓이 아니라는 걸 내가 알아. 알겠지? 나는 사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거야."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세상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네 말대로 아닌 거야."

 

그의 진심 어린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의 말은 아까 여직원들 사이에서 나온 그 어떤 말들보다도, 더욱 날 강하게 움직였고 지탱해 주었다.

 

"키타자와 씨…."

 

나는 결코 그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그 순간,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드디어 돌아왔다, 내 집!"

 

여기엔 날 지켜 줄 사람은 없지만, 그만큼 조용히 쉴 수 있을 거야.

나는 여행 가방을 내려놓았다. 내가 키타자와 씨의 집으로 챙겨 갔던 짐들이었다.

나는 내가 그의 집에 남기고 온 메모를 떠올렸다.

 

'그가 알게 되면 분명 놀라겠지….'

 

그 날 아침, 나는 키타자와에게 몸이 좋지 않다고 말하고는 혼자 출근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현관에서 그를 배웅하고 나서 나는 재빨리 내 짐들을 챙겼다.

검은 잉크로 휘갈겨 쓴 메모를 그의 식탁에 놓아 두고 그대로 뛰쳐나왔다.

 

'그를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 그를 곤란하게 할 수가 없어.'

 

그를 사랑하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거리를 둘 수밖에는 없는 거야.

 

그 날 탕비실 밖에서, 나는 마침내 우리 회사 직원들이 나를 정말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다.

즉 키타자와의 곁에 남아 있는 것이 결코 그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후회하진 않아.'

 

그렇기에 나는 그의 전화를 피하기로 했다. 만나면 마음이 약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의 존재는 그의 명성과 평판에 해가 될 뿐이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심호흡을 하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사직서」

 

모든 작업을 마쳤고 서명과 인쇄까지 끝냈지만, 사무실에 들어가서 태연하게 이걸 내밀 만큼의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유급 휴가를 다 써 버렸기 때문에, 나는 아무튼 이 일을 직접 마무리지어야만 했다.

나는 단지 그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게 다 뭐 하는 짓인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발신 번호 표시 금지가 되어 있어, 공중전화로부터 걸려 온 전화인 것 같았다.

 

"여보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고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린?"

"키타자와 씨…?!"

"드디어 받았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야?"

"저, 그게…."

 

나는 어설프게 말을 더듬었다. 마치 과거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로 되돌아간 것처럼….

키타자와는 작게 웃었다.

 

"맙소사….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너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어쩌나 하고…."

"키타자와 씨…."

"네 메모를 보고 전화를 걸어 봤지만 안 받더군."

"그래서 몇 번이나 시도하다가 생각해 냈지. 네가 내 번호를 차단했다면, 차단되지 않은 번호로 걸면 된다고."

 

그는 조용히 웃었다.

 

"이건 바보 같은 짓이야…. 사랑에 빠지면 어리석어진다는 말은 틀렸어. 사랑하게 되면 머리 회전이 빨라지지."

 

너무나도 오랜만에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 너무나도 기뻤다.

휴대폰 수화기를 손에 든 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 역시 정말로,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맞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린…."

 

그는 문득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네?"

"보고 싶어."

 

그는 낮고 유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키타자와씨…."

 

그의 그 한 마디에 내 의지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내가 굳게 결심했던 것들도 너무나도 먼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실은 나 지금 네 집 앞에 와 있어…. 그러니까 나올래?"

"……!"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사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몇 초 동안 초조하게 창문 빗장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가까스로 창문을 열어 젖혔다.

바깥에는 그가 간절한 태도로 내 쪽을 올려다 보고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가 그가 팔을 들어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곧장 뛰쳐나갔다.

 

 

 

"키타자와 씨!"

 

너무나도 가깝고도, 너무나도 먼 거리.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서둘러 길을 가로질러 달렸다.

키타자와는 두 팔을 펼치고 미소를 지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린."

 

 

 

나는 나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키타자와 씨!"

"린…. 잘 와 줬어."

 

관자놀이를 그의 가슴에 기대자 따뜻한 온기가 온 몸에 스며들었다.

지금껏 오랫동안 느껴 보지 못했던 기분.

키타자와는 내 등을 토닥이며 쓰다듬었고, 나는 마치 아이가 부모에게 응석 부리듯이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에게 매달렸다.

 

"다시는 날 떠나지 마, 알겠지?"

 

그는 뒤로 물러서서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안에 쌓여 있던 것들이 모두 바깥으로 넘쳐 흐를 것만 같았다.

나는 내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네가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알았지?"

 

키타자와 씨는 내 고통을 없애 주려는 듯 가볍게 내 눈꺼풀에 입을 맞추었다.

그 곳, 그 조용한 동네 거리에서 우리는 서로를 숨막힐 정도로 끌어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확인했다.

 

 

 

이윽고 우리는 나의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가 내가 사는 집까지 들어오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출출하시죠? 뭔가 간단하게라도 만들어 드릴까요?"

"그거 좋지…. 네가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여기 마음에 드는군."

 

그는 무심코 나를 따라 들어왔다.

 

"이렇게 직접 만들어 먹나?"

"당연하죠. 저는 매일 외식할 여유는 없는걸요."

"그것도 그렇군."

 

내가 잊고 있었던, 그와의 이 친밀감….

나는 문득 옛날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음?"

 

그는 즐거워 보였다.

 

"이래서는 요리를 할 수가 없잖아요."

"흠, 그런가?"

 

그는 나를 뒤에서 팔로 감싸 안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못 움직이겠어요…."

"이렇게 있는 것도 오랜만이고…. 그 동안 못 만난 만큼 풀어야지."

 

그의 손길이 나의 몸을 훑었다.

 

"그…그만, 위험해요."

"칼을 말하는 거야? 내려놓고 이리로 와."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나는 그를 뿌리치려고 했다.

 

"또 자제를 잃었군…. 이러려고 온 건 아니었는데."

"네…?"

 

그는 내 목덜미에 가볍게 키스하고는 내 어깨 위에 이마를 기댔다.

 

"이제 준비는 다 끝났어, 린. 내일 출근해."

"준비라구요…?"

"그래. 사표 쓰려고 했었지?"

 

그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그는 정말로 나에 대해서라면 무엇이든 알아차리고 마는구나….

 

"그렇게는 안 돼. …이런 식으로 끝내진 않을 거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결심하듯 말했다. 그리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