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의 유혹] 야규 무네노리 공략：1장

한조："공주, 지금부터 우리는 이가로 향할 겁니다."
한조："하지만 여섯 명이 함께 움직이면 눈에 띌 테니, 저와 둘이서 가시지요."
린："한조 님과 둘이서요…?"
한조："송구하오나, 제가 공주님의 경호를 맡겠습니다."
린："…알겠어요."

린："저…. 아까 동자승들과 함께 야규 무네노리라는 분의 이야기를 했어요."
한조："야규 무네노리 님…?"
린："네, 도쿠가와 가(家)를 섬기고 있다는…."
한조："아아. 그 분은 야규 집안의 후계자임과 동시에 뛰어난 검객이죠."
한조："정치 수완도 뛰어난 분이라 들었습니다."
린："그렇군요. 대단하신 분이네요…."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만나 보고 싶네….

 

​이가 촌장："그대는 본래 쿠스노키 가의 후예인 공주…."
​이가 촌장："인술(忍術)의 원류(原流)이자, 장차 쿠스노키 류를 이으실 귀한 분입니다."
 
닌자를 멸망시키려 하는 오다 노부나가에 대항하기 위해, 유파를 불문하고 닌자들이 손을 잡았다.
그 결속의 상징으로 내가 선택된 것이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실감나지 않는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절에 사는 평범한 소녀였을 뿐인데….

 

한조："공주,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린："아뇨, 전혀요…!"
한조："그렇습니까. 공주는 씩씩하시군요."
 
자상하고 성실해 보이는 미소….
이런 상황이지만, 한조 님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조금 안심이 된다.
 
한조："힘드실 땐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제가 공주를 업고 갈 테니."
린："아무리 그래도, 업혀서 가는 건…."
한조："이래봬도 체력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린："호호, '이래봬도'라뇨! 한조 님은 명문 핫토리 가의 행수(行首)가 되는 분이시잖아요."
​한조："저도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서요."

​한조 님, 나보다 훨씬 연상인데도 왠지 귀여운 면이 있으시네. 농담도 잘 하시고….
 
린："힘내서 걸을게요. 조금이라도 빨리 이가에 도착해야겠죠?"
한조："예, 노부나가의 추격대들이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요."
린："노부나가는 닌자의 움직임을 눈치 채고 있는 건가요?"
한조："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있겠지요. 노부나가는 빈 틈 없는 남자니까."
 
이 산 속에까지 노부나가의 추격자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조："…죄송합니다. 겁 줄 생각은 없었는데…."
린："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이제 말씀 낮추세요."
린："한조 님은 저보다 나이도 위시고, 핫토리 가의 행수시잖아요."
한조："아닙니다, 그러면 안 되지요. 공주께서는 우리들 닌자 결속의 상징이신데…."
 
한조 님은 정말 예의 바르시구나…. 명문 집안의 가장인데도 으스대거나 하지 않으셔.

 

​린："……?!"

갑자기 한조 님이 난폭하게 내 팔을 휘어잡았다…!
 
린："왜, 왜 그러세요…?!"
한조："쉿! 주위에 누군가…."
 
인기척…? 나는 아무 것도 못 느꼈는데….
 
린："꺅!"

한조 님이 한 손으로 나를 번쩍 들어 올려, 나무 위로 냅다 던졌다.
 
한조："꽉 잡아요!"

나는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로 나뭇가지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린："……?!"
 
저 많은 무리는…. 수도승…?
 
수도승１："호오, 이런 산 속에서 여행자와 마주치다니."
한조："…웬 놈들이냐?"
수도승２："보시다시피, 수도 중인 행자들입니다."
한조："……."
 
한조 님과 수도승들이 서로 노려보더니….
갑자기 수도승이 지팡이를 치켜 들었다…!
지팡이 안에 칼날이…?!
 
한조 님이 재빨리 검을 뽑아, 수도승의 검을 받아 쳤다.

─챙, 챙!
 
수도승３："이야압!"
수도승４："우아악!"
 
대단하다…. 저 많은 적들을 빈 틈 없이 베어 버렸어….
 
수도승５："이 놈이…!"

검으로는 못 당해 내겠다고 생각했는지, 한 수도승이 소형 화승총을 꺼내 겨누었다.

─탕, 탕!
 
한조："…읏…!"

한조 님은 빠르게 피하며 수리검을 던졌다.

수도승５："와악!"

적들은 하나 둘 쓰러져 갔다…. 저게 핫토리 가 행수의 실력이구나….
 
린："……?!"
 
그 때, 등 뒤에서 누군가 내 팔을 졸라 맸다…!
 
수도승６："핫토리 한조!"
한조："……!"
수도승６："이 계집이 닌자 공주렷다! 계집을 구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무기를 버려라!"
한조："……."
수도승７："자, 양 손 모두 머리 위에 올려!"
 
한조 님은 천천히 팔을 들고….

─휙

수도승６："…뭣…?!"

한조 님이 던진 수리검이 나를 붙잡은 수도승에게 명중했다.
 
수도승７："네, 네 이놈…!"
 
수도승이 내게 달려들었다!
 
수도승６："이 계집도 같이 데리고 가 주마!"

한조："공주!"
린："꺄아아!"
 
나는 수도승에게 붙들린 채 벼랑 밑으로 떨어졌다.

 

…여기는… 강가…?
 
린："아야…!"

일어서려 하자 발에 통증이 느껴져 왔다.

 

​???："얌전히 누워 있어라."
 
이 기모노는….
사무라이…?
 
???："넌 저 벼랑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었었다."
 
…하, 한조 님은 어떻게 된 거지?!
 
린："저…, 저와 함께 있던 남자 분은…?!"
 
???："핫토리 한조를 말하는 건가."
린："……!"
 
이 사람, 어떻게 한조 님의 이름을 아는 거지?!

​???："그 자는 연막탄을 써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지금쯤 필사적으로 널 찾고 있을 테지."
​???："…그래도 그 정도로 많은 적들과 맞붙어 싸우다니, 역시 이가 닌군의 두령답군."
린："…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나? 내 이름은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다."
린："야규…?!"
 
'야규'라니, 이 사람이 바로…?!
어떤 사람인지 궁금은 했지만,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무네노리："아무튼…. 설마 이런 조그만 계집애가 닌자 공주라니."
린："계, 계집애…?!"
무네노리："좀 더 공주라는 이름에 어울릴 만한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하다. 아무리 대단한 사무라이라고는 해도, 너무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야…?
 
무네노리："뭐, 너도 본인이 공주라는 사실은 오늘 아침에야 알았겠지만."
 
……? 이 사람, 어떻게 닌자에 대한 일을 알고 있는 거지…?
 
린："…어떻게 사무라이인 당신이 닌자의 정보를 가지고 계시는 거죠?"
무네노리："…너에겐 말해 두는 게 좋겠지. 난 야규의 검술 사범이다."
무네노리："동시에… 카게 야규의 두목이기도 하지."
 
카게 야규(影柳生; 그림자 야규)…?
 
무네노리："은밀하게 뒤에서 비밀 조직의 형태로 움직이는 야규 가문의 집단을 말한다."
무네노리："그걸 알게 된 핫토리 한조가 서신을 보내 왔지."
 
한조 님이 야규 가문에 서신을….
 
무네노리："자세한 건 적혀 있지 않았지만,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무네노리："아마도, 카게 야규의 힘을 빌리고 싶었던 거겠지."
 
한조 님은 카게 야규에게도 협력을 요청할 생각이셨구나….
 
무네노리："우리 카게 야규의 힘은, 절대적이니까."
무네노리："…아무튼 그래서 핫토리 한조의 진의를 알아 보기 위해 닌자의 움직임을 살핀 거다."
무네노리："설마 그런 와중에, 이런 걸 줍게 될 줄이야."
 
'줍다'니, 나 말하는 거야…?
 
무네노리："하지만, 이걸로 확실히 알았다. 닌자와 오다는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할 거라는 걸."
린："……!"
무네노리："너희를 습격한 수도승으로 위장한 자들은, 노부나가의 부하로 하치스카의 닌자다."
린："하치스카…?"
무네노리："닌자를 배신하고 노부나가에게 붙은 인술집단이지."
 
무네노리 님은 그런 자세한 내막까지 알고 계시구나….
하지만, 분명 내가 알기로는….

​린："도쿠가와 가는 오다와 동맹을 맺은 상태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무네노리："그 이상의 이야기는 몰라도 돼."
 
단호하게 거절 당했다….
 
모르겠어. 무네노리 님의 진의는 도대체 뭘까…?

 

린："저, 그건 그렇고…."
"한조 님이 어디 계신지, 짐작 가는 곳은 없나요?"＊
 
무네노리："없어."
 
…그렇게 딱 잘라 말할 것까지는….
​…그래도 구해 주셨으니 제대로 인사는 해야지.
 
린："저….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린："입장도 있으신데 저를 구해 주시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무네노리："…호오. 그래도 꽤 공주다운 면도 있군."
무네노리："산 속 절에서 자란 야생 동물 같은 계집애라고만 생각했는데."
 
윽…. 뭐라고?
한조 님과 비교해서, 태도나 말투가 너무 거만하잖아.
지위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걸까…?
 
무네노리："내가 거만한 건 타고난 거라서 말이지."
 
(윽, 설마 내 마음을 읽힌 건가….)
 
정치 수완이 대단하기로 유명한 이유를 알겠어.
정치가일 뿐만 아니라, 검술로도 초 일류겠지….
 
린："……?!"
 
무네노리 님이 갑자기 내 기모노 옷자락을 걷어 올렸다…!
 
린："뭐… 뭐 하는 거예요…?!"
무네노리："가만히 있어."
린："─아얏…!"
 
무릎에 심한 통증이…!
 
무네노리："벼랑에서 떨어질 때 무릎을 부딪혔군."
 
그러면서 부어오른 내 무릎을 세게 눌렀다.
 
린："아야야…!"
무네노리："이래서는 오늘 못 걷겠는데."
 
…그렇게까지 세게 누를 필요는 없잖아…!
 
무네노리："약을 발라 두었으니, 내일이면 붓기가 빠질 거다."
 
그래도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무네노리 님이 약을 발라 주셨구나….
 
무네노리："이 정도로 끝난 게 불행 중 다행이야. 운이 좋았군."
린："저기…. 상처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네노리："넌 닌자의 공주니까. 야규에 있어서도 이용 가치가 있지 않겠어?"
 
이용 가치….
달리 날 생각해서 치료해 준 건 아니었겠지. 이해는 되지만….
 
무네노리："아무튼, 이대로 걷는 건 무리다."
무네노리："할 수 없나…. 오늘 밤은 이 근처에서 쉬도록 하지."
린："쉰다구요…?"
무네노리："잘 수 있을 만한 동굴이라도 찾아 봐야지."
 
무네노리 님과 아침까지 같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무네노리："뭐야, 그 얼굴은."
린："아뇨, 아무 것도…."
무네노리："나라고 좋아서 너랑 있는 거 아니다."
린："……."
무네노리："너를 볼모 삼고 있으면, 핫토리 한조 쪽에서 알아서 찾아 올 테니까."

 

​무네노리："오늘 밤은 여기서 묵어야겠군."
 
이런 좁은 곳에서 무네노리 님과 단 둘이라니, 긴장하게 된다….

린："저…, 한조 님과는 어떤 이야기를 하실 거죠?"
무네노리："네가 알 필요는 없어."
린："……."
무네노리："불만 있나? 나는 너의 한조님과는 달라서 네 응석 같은 건 안 받아 준다고."
린："응석이라니…."
무네노리："닌자 공주라고 다들 치켜세워 주지?"
린："……!"
 
그야 한조 님은 정중하게 대해 주시기는 하지만….
그건 내가 공주여서가 아니라, 원래 한조 님이 다정한 분이니까….

무네노리："핫토리 한조도 안됐군. 이런 꼬마 아가씨나 돌봐 줘야 한다니."

이 사람, 왜 이렇게 심하게 말하는 거야…?
나도 갑자기 일어난 일들 뿐이라 애써서 적응하려고 노력 중인데.
갑자기 적에게 습격 당하지를 않나, 한조 님과 떨어지지를 않나….
사실은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워서, 울고 싶을 정도인데….
 
무네노리："뭐야, 토라졌냐?"
린："……."
무네노리："정말…. 어쩔 수 없다니까, 이런 꼬마 아가씨는."
린："그 꼬마 아가씨라고 부르는 거, 그만 둬 주세요!"
무네노리："산사에서 자란,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 아니었나?"
 
이런 식으로 사람을 바보 취급이나 하고….

 

무네노리："후우…."
 
무네노리 님은 긴 담뱃대를 꺼내더니 담배를 피우시기 시작했다.
거만하고 짓궂지만, 얼굴은 잘생겼구나….
콧날도 오똑하고 속눈썹도 길어….
 
무네노리："그렇게 흘끔거리지 마라."
린："……!"
무네노리："산에서 자라서 담뱃대는 신기한가?"
 
또 바보 취급하고…. 정말 싫은 사람이다.
어서 빨리 한조 님께 돌아갔으면….

무네노리："핫토리 한조는 아직 미혼이겠지?"
린："…네, 아직이신 것 같아요."

무네노리："흠, 핫토리 가의 가장 정도라면 혼인하고 싶어하는 여자는 널려 있을 텐데."
​린："그렇게 말씀하시는 무네노리 님은요?"
무네노리："나도 아직이다. 뭐, 조만간 집에서 정해 준 상대와 이루어지겠지."
린："즉, 정략 결혼이라는 거네요."
무네노리："그래. 그래서 뭐가 잘못됐나?"
 
무심한 눈…. 이런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과연 있을까?
 
린："직접 결혼 상대를 고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세요?"
무네노리："안 해. 내겐 그런 데 허비할 시간이 없어."
무네노리："게다가 여자들은 재잘재잘 시끄럽고 성가실 뿐이야."
 
성가시다니…. 이런 사람의 아내가 된다면 정말 고달플지도….
저 차가운 눈이 내가 사는 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그 순간….

무네노리 님이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이, 이건 대체 무슨…?
 
무네노리："……."
 
영문도 모른 채, 나는 꼼짝도 못하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네노리："뭐야, 더 세게 안아 줬으면 좋겠어?"
린："……! 아니에요!"
무네노리："바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 옆에 있지 않으면 적이 왔을 때 지킬 수가 없잖아."
무네노리："지금 네가 죽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는 건 이 쪽이거든."
린："…제게 이용 가치가 있는 동안은 살려 두고 싶다 이거죠?"
무네노리："그렇다. 이제 하고 싶은 얘기는 끝났나?"
 
일족을 책임져야 할 입장이니, 항상 냉정해야 한다는 건 알겠지만….
 
(한조："힘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업고 갈 테니까.")
(한조："이래봬도 체력에는 자신 있거든요.")
 
한조 님의 미소가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
 
무네노리："……."
 
무네노리 님은 아까부터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만 피우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사람과 둘이서 지내야 하는 걸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