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의 유혹] 키리가쿠레 사이조 공략：10장

(사이조 님의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침상에 누워 몸을 웅크리고 벽을 향했다.
그 때, 문이 열렸다.
 
사이조："린, 벌써 자고 있는 거냐?"
린："……."
사이조："이봐, 린."
린："…만지지 말아요!"
 
나는 나를 만지려 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린："오리쿠 씨랑 이야기 나누는 것…. 들었어요."
사이조："뭐야…. 우리 얘길 엿들은 거야?"
린："그녀를 도와 주는 대신…. 그녀와 자려고 하는 거죠?"
사이조："……."
린："그건 옳지 않아요…. 더러운 짓이라구요!"
 
……!
사이조 님이 나의 어깨를 세게 잡았다.

 

사이조："넌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사이조："난 닌자다. 임무를 위해서는 어떤 짓이든 할 수 있어."
린："임무…?"
사이조："여긴 여관이고 그녀가 내게 마음이 있다면, 그녀로부터 많은 정보를 캘 수 있어."

(임무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라고…?)
 
사이조："이 정도는 우리 세계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
린："…싫어…!"

나는 사이조 님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린："이런 일을 해도 괜찮나요?"＊
사이조："어쩔 수 없어. 내 임무의 일환이니까."
린："하지만…!"
사이조："이제 그만 조용히 해!"
린："……!"

사이조 님이 나를 넘어뜨려 눕혔다.
 
린："싫어…. 그만 해요…!"
사이조："왜지? 너도 안기고 싶잖아."
린："그렇지 않아요…!"
 
(그가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어서 일어날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이런 건 싫어.)
 
린："떨어져요!"
 
나는 사이조 님의 몸을 힘껏 뿌리쳤다.
 
린："…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안기고 싶지 않아요."
사이조："……."
린："흑…. 흑…."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사이조 님이 잡았던 어깨가 아파….)
(그리고 가슴은 터질 것 같다.)
 
사이조："…닌자들은 임무가 주어지면 어떠한 일이든 하지 않으면 안 돼."
린："……."
사이조："알겠어? 우리는 너무 달라.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사이조 님은 일어나 등을 돌렸다.
 
사이조："…다른 방에서 자겠다."
 
(어째서…? 그 동안 잘 지내 왔는데….)
(왜 사이조 님은 내 감정을 전혀 알아 주지 않는 걸까…?)

 

다음 날.
(어제 그 일이 있고 난 후, 사이조 님은 내게 한 마디도 없으셨다.)
 
린："…곧 어두워지겠구나…."
 
(사이조 님은 오늘도 하루 종일 정보를 수집하러 나가셨다.)
(곧 돌아 오시겠지….)

그 때,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린："다녀오셨어요…."
사이조："그래…. 난 또 나가 봐야 해."
 
(오리쿠 씨를 도우러 그 불한당 무리에게 가려는 걸까?)
 
사이조："…얌전히 방 안에 있어."
린："네…. 그렇게 할게요."
 
(사이조 님은 오리쿠 씨를 도운 뒤에….)
(사이조："이 이상의 즐거움은…. 내일로 미루도록 하죠.")

 

린："…죄송해요, 사이조 님."
 
나는 두 사람을 몰래 뒤쫓았다.
 
(헤에…. 그 동안 익혔던 닌자 기술을 쓸 때가 다 있네.)
(하지만, 따라가서 내가 뭘 어쩌려는 걸까.)
(그에게 방해만 될 뿐일 텐데…. 분명 용서 받지 못할 거야.)
 
린："…나는 닌자들의 공주로서 자격이 없어."
 
(그건 잘 알고 있지만….)
(이대로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만은 없어.)

 

결국 나는 숲 속 저택까지 따라왔다.

(엄청 크네…. 이게 그 두목이 산다는 곳이구나.)
 
린："…위험해! 누가 오고 있어."
 
(어떻게 하지…. 그래, 나무 위에 숨자.)

나는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갔다.
 
(헤에, 나무 위로 올라가는 기술도 쓸 데가 있네.)
(…사이조 님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배운 건 아니지만….)
 
바로 그 때, 사이조 님과 오리쿠 씨가 창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들의 입 모양을 주의 깊게 읽었다.
 
사이조："저들의 두목은 정말 좋은 저택에서 사는군요."
오리쿠："네…. 다른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돈으로 누리고 있죠."
 
(그래서 오리쿠 씨 같은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는 거구나…. 가엾기도 해라.)
 
그 때였다.
 
강아지："왈! 왈! 왈!"
 
(안 돼…! 개가 날 알아챘어.)
 
린："제발, 조용히 해…!"
강아지："왈! 왈!"
린："내가 잡히면 친구들이 곤란해진단 말이야. 제발 멈춰!"
강아지："우우…. 멍…."
 
(…아무래도 동물 조련사로 직업을 바꾸는 게 나을 것 같다.)
 
남자："이 봐! 저 개가 나무 쪽을 보고 마구 짖어 대지 않았어?"
 
(이런…! 경비원 두 명이 날 곧 찾아 낼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나뭇가지에서 저택 벽으로 몸을 날렸다.
이걸로 사이조 님께 좀 더 가까워졌다.
나는 창문 안을 들여다 보았다.

 

사이조："저 자가 두목입니까."
오리쿠："네…. 죄송해요. 저를 위해 이렇게까지…."
사이조："말했었죠. 대가 없이 일하지 않는다고."
 
사이조 님이 오리쿠 씨의 몸을 끌어 당겼다.
 
오리쿠："쥬베이…. 이러면 안 돼요."
사이조："왜 안 되죠?"
오리쿠："왜냐면…. 옷이 다 구겨질 테니까요."
 
오리쿠 씨가 떨어져 자신의 기모노를 매만졌다.
바로 그 때─
 
사이조："이걸 찾습니까?"
 
(…칼?!)

사이조 님이 손에 작은 단도(短刀)를 들고 있다.
 
오리쿠："그… 그건…?"
사이조："방금 전에 당신의 기모노에서 빼 낸 겁니다."
오리쿠："……."

 

사이조："넌 사람 잘못 보고 미인계를 쓴 거다."
 
(미인계?!)
 
오리쿠："키리가쿠레 사이조… 건방진…!"
 
─!?
사이조 님이 공중으로 몸을 날려, 순식간에 닌자 모습으로 바뀌었다.

오리쿠："…모두 나와라! 모두 나와!"
 
문이 열리고, 푸른 옷의 닌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저들은…. 하치스카의 닌자들!)
 
두목："키리가쿠레 사이조, 예상했던 대로 까다로운 상대로구나."
사이조："네가 바로 하치스카의 우두머리냐?"
 
(저 기분 나쁘게 생긴 녀석이 두목…?)
 
두목："오리쿠가 쿠노이치(くノ一)라는 것을 언제부터 알았지?"
사이조："처음부터."
오리쿠："…뭐…라고…?"
사이조："불한당들이 널 밀쳤을 때, 네가 대처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
 
(처음부터 알고 계셨구나…. 그래서 그녀에게 접근했던 거였어.)
 
두목："그렇군…. 우리에게 접촉해 오려고 속은 척 했던 건가."
사이조："가장 빠른 길일 테니까."
두목："말 한 번 자신만만하군."
사이조："과연 말만 그런지 확인해 볼 테냐?"
 
사이조 님이 무기들을 꺼냈다.
 
오리쿠："잡아라! 제 아무리 키리가쿠레 사이조라 해도 이렇게 많은 인원에 맞설 순 없다!"
 
닌자들이 사이조 님을 포위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닌자１："이야아!"
닌자２："으…악!"
 
사이조 님은 적들을 하나 둘 베어 나갔다.
(역시 진정한 실력가….)
 
오리쿠："에잇, 이 쓸모 없는 바보들!"
두목："…사이조, 내가 널 상대해 주마!"
 
하치스카의 두령이 칼을 빼어 들고 사이조 님에게 달려 들었다.
사이조 님의 칼과 그의 칼이 공중에서 교차했다.
(둘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눈이 따라갈 수 없다.)
 
닌자："꼼짝 마라!"
 
─!!
푸른 옷의 닌자가 칼을 겨누며 말했다.
 
닌자："넌 쿠스노키의 공주지?"
린："……!"
닌자："두목! 쿠스노키의 공주를 잡았습니다."
 
사이조 님이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이조："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두목："이제 끝났다!"
 
─!?
적의 대장이 입으로 무엇인가를 쏘았다.

(도… 독 침?!)
 
사이조："윽…!"
 
사이조 님이 목을 누르며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린："사이조 님…! 안 돼…!"

 

두목："흠…. 그러니까 네가 바로 닌자 통합을 상징할 쿠스노키의 공주란 말이지?"
사이조："……."
 
사이조 님은 그의 앞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린："제발, 사이조 님께 해독제를…!"
두목："……."
린："노부나가에게 날 데려가. 내겐 어떤 짓을 해도 괜찮다고…!"
두목："노부나가 님은 너희 둘 모두를 원하신다."
린："……."
두목："여봐라! 공주를 포박하라! 그리고 사이조를 묶어 천장에 매달아라."
 
푸른 옷의 닌자들은 우리를 묶어 두고 나갔다.

 

린："이 모든 게…. 어리석은 나의 질투심 때문에…."
사이조："…적어도 몰래 잠입하는 법은 확실히 배운 것 같군."
린："죄송해요…! 어떤 사죄도 소용 없다는 것은 알지만, 모두 제 잘못이에요…."
사이조："너만 무사하다면 그걸로 됐어…."
 
(사이조 님….)
 
린："이대로라면 독 때문에 죽게 될지도 몰라요."
사이조："독에 대처하는 방법은 어렸을 때부터 배워 왔어. …괜찮을 거다."

 

오리쿠："어떻게 그걸 확신하지?"
린："오리쿠…."
오리쿠："그 독은 사람을 순식간에 죽이진 않아. 밤 새도록 널 괴롭힌 후 끝낼 것이다."

오리쿠가 내 눈을 쳐다보았다.

오리쿠："기분이 어때? 너 때문에 네 앞에서 이 자가 죽어 가는 걸 보는 것이!"
린："오리쿠! 제발, 해독제를…."

─찰싹.
오리쿠가 내 뺨을 때렸다.

오리쿠："난 너처럼 멍청한 여자들을 제일 싫어해!"
린："……."
오리쿠："흥, 그래도 네 덕택에 사이조를 고문할 기회를 얻긴 했지만."

오리쿠가 가죽 채찍을 꺼내 들었다.
 
─철썩!

사이조："으윽…."
오리쿠："아프지? 즐거움을 위해 가시까지 박아 뒀지."
린："제발, 그만!"

─철썩!

사이조："헉…!"

사이조 님의 몸이 붉은 피로 뒤덮였다….
오리쿠는 사이조 님을 계속해서 채찍질했다.

오리쿠："근사하지 않아? 너 때문에 이 자는 이렇게 죽게 될 거야."
린："제발…. 안 돼. 그만…!"
오리쿠："시끄러운 계집애! 너도 고문 당하고 싶으냐?"

 

사이조："날 죽이려면 죽여라."
오리쿠："아직도 말을 할 수 있다니 놀랍군."
사이조："…하지만, 공주에게는 손 대지 마라."
오리쿠："……."
사이조："제발…. 그녀를 다치게 하지 마라."
 
(사이조 님….)

오리쿠："공주가 너에게 매우 특별한 사람인가 보군."
오리쿠："아니면, 공주를 사랑하고 있나?"
사이조："그건…. 너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오리쿠："흥…. 네놈은 내가 지금까지 봐 온 자들 중 가장 끈질긴 녀석이구나."
 
바로 그 때 문이 열렸다.

닌자："오리쿠, 대장이 널 찾으신다."
오리쿠："……."
 
오리쿠는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이조 님을 보았다.
 
오리쿠："내일 보게 될 네 시체가 기대되는군."

 

린："사이조 님…!"
사이조："…린, 기다려."
 
사이조 님이 몸을 비틀어 줄을 풀었다.
 
─쿵

사이조："하아… 하아…. 밧줄을 풀고 나올 힘은 남아 있었군."
사이조："네 것도 풀어 줄게. 기다려…."
 
사이조 님이 내 밧줄도 풀어 주었다.
 
린："그냥 절 두고 달아나세요!"＊
린："혼자서는 가실 수 있잖아요."
사이조："나는 지금 거의 움직일 수 없다."
사이조："오히려 네가 날 두고 가야 해. 혼자라면 숲으로 달아날 수 있어."
린："하지만, 그러면 그들이 사이조 님을 죽일 거예요."
사이조："그렇겠지…. 하치스카는 날 살려 보내진 않을 거다."
 
(그를 죽게 놔 두고 혼자 갈 수는 없어!)
 
사이조："그냥 내 말 들어. 가!"
린："싫어요!"
사이조："……."
린："사이조 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린："혼자 남게 될 바에야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아요."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사이조："넌 닌자 통합의 상징이야. 경거망동하지 마라."
린："그냥 평범한 사람이게 해 줘요! 지금만이라도…."
사이조："……."
린："전… 당신하고…."
 
그 때─
사이조 님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다.
 
사이조："…이제야 말하는군."
린："……."
사이조："사랑해."
 
사이조 님이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어루만졌다.
 
사이조："내 임무와 상관 없이 기꺼이 널 지키고 싶었어."
사이조："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런 게 사랑이라면…."
린："사이조 님…."
사이조："…연회가 있던 날, 내게 해 준 이야기…. 기억하고 있어."
사이조："내가 죽더라도 넌 행복하길 바란다."
 
(왜 그렇게 부드러운 눈으로 절 보시는 건가요?)
(제가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원인인데도….)
 
린："당신이 죽는다는 말, 하지 마세요…."
 
사이조 님은 숨이 막힐 정도로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사이조："린…. 살아 남아서 부디 행복해라."
 
(사이조 님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우리의 마음을 이제 막 확인했는데, 여기서 끝낼 수는 없어.)
나는 사이조 님의 목으로 입술을 가져갔다.
 
사이조："…뭐 하는 거지?"
린："독을 빨아 낼 거예요."
사이조："그렇게 해 봤자 죽는 걸 늦출 뿐이야."
린："달아날 방법을 찾는 시간을 줄 거예요!"
린："당신이 그냥 죽게 놔 둘 순 없어요."
 
(우리 둘 다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야만 해!)
(여기서 빠져나가 행복하게 살고 말겠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