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

사귄 지 3년이 다 되어 가는 남자친구에게 처음으로 '많이 믿는다'고 말했다.

연애 초기부터 1년이 넘게 나를 철저히 고생시키고 여러 번 상처를 준 그에게
그 동안 단 한 번도 '믿는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뢰가 없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러니까, 마이너스였던 신뢰를 0으로 끌어올리고,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신뢰를 뒤늦게 이만큼 쌓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믿는다'는 말을 한 날, 처음으로 '같이 살자'는 말을 들었다.

나는 내가 비혼주의인 것을 이미 사귀기 전부터 밝힌 상태였고
상대방도 그걸 알면서 내게 고백했으니,
당연히 그도 애초부터 그런 생각은 없는 줄로만,
즉 우리 둘의 니즈(?)가 같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실제로도 오간 적 없는 말이었는데,
어쩌면 사실 상대방은 그 동안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을 믿지 않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못 미더운 남친을 3년 가까이 둔 나도 나고,
신뢰 없다는 여친을 3년 가까이 둔 너도 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제가 될지, 정말 올지 안 올지도 모를 가능성을
몇 센치 정도만 열어 두는 정도는 괜찮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