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그리고 2차 가해에 대한 것들

대학교 졸업 후 내가 구한 첫 직장은 아르바이트였다.

그 곳은 한 마디로 생지옥이었는데, '정직원이 되려면 나한테 잘 보이라'며 성추행을 일삼다가 내가 거부하자 앙갚음하는 남자 사수와, 나에게 고백하고 거절 당한 후 나에게 사사건건 꼬장을 부리는 동갑내기 남자 팀원, 그리고 나와 어떻게 잘 해 보려고 수작을 부렸다가 이 또한 거절 당하자 나를 향한 남자 사수의 성추행을 옹호하기 시작한 남자 상사가 한데 어우러진 아수라장이었다. 그 와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팀장이 내게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에 가장 크게 주목하고는 눈을 빛내며 "그 팀장 차는 있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긴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엄마가 내게 했던 그 말이 잊혀지지 않고 있다. 엄마는 이제 기억도 못하겠지. 아마도 엄마에게 있어서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었던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 한 마디짜리 진실은 이제 내 마음 속 깊은 곳에만 존재한다.

성차별이든 성범죄든 그 다른 어떤 피해든 간에, 피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공감이 없는 한 가족조차도 2차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바로 이 사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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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젊은 남성들 세대는 "우리 어머니 세대까지는 성차별의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나와 같은 세대의 여성들은 성차별 피해자라는 사실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지만 그들이 말하는 그 '어머니 세대'조차도 과거 성차별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현재의 가해자일 수 있다. 그리고 그 현재의 가해자가 겨냥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아들들과 같은 세대의 여성들이고.

나는 온라인 상으로는 이런 예민한 화제를 거리낌 없이 글로 쓰지만, 오프라인 상에서는 선뜻 사람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서로 주장하고 싸우는 것 자체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다 같이 부대끼며 일할 때는 아무 문제 없이 함께 잘 해 온 사람들이 이 문제에서만큼은 무서울 정도로 비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겁이 나서다. 즉 서로 주장하고 싸우는 일 자체가 상식적으로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 혹시라도 그런 있을 리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인간적으로 받을 충격과 실망감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것 같다.

온라인 상으로 일면식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이야 그냥 무시하고 넘기면 그만이지만,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부대끼며 더불어 지내야 할 오프라인 상의 내 주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나는 인간으로서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그들도 뭔가 억울한 구석이 있을 테니 오기가 불거져나와 하는 말들일테지만, 세상에 본인이 아프고 억울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아프고 억울함을 무시해도 좋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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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상위시대를 부르짖으며 이제는 남자들이 더 힘든 시대라고 주장하는 남성들 또한 미워하지 않는다. 다들 어느 정도는 직간접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소리들일 테고, 내가 경험한 사실만큼 엄연한 다른 사실들을 굳이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피해자인 내가 그들을 증오하지 않듯, 저마다 다른 방면에서의 피해자인 그들도 또다른 누군가를 증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성이라는 것이고, 무릇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했다.